동네에 있던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대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다들 온라인으로 사니까 이제 오프라인 매장은 끝났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6월 말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읽고 그 전제를 접어야 했다. 온라인이 커질 때 오프라인 매출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줄어든 건 오프라인 전체가 아니라 대형마트라는 특정 업태 하나였다. 그리고 이 구분을 놓치면 지난 10여 년의 유통 정책이 왜 이렇게 됐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온라인 60퍼센트라는 숫자
먼저 판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부터 보자. 온라인 유통시장은 2024년 기준 약 97조 7,000억 원 규모다. 2018년 48조 원에서 두 배 이상 커졌다. 전체 유통시장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023년에 절반을 넘어섰고, 올해 3월에는 60퍼센트에 도달했다.
절반을 넘은 지 2년 남짓 만에 60퍼센트다. 이 정도면 온라인이 유통의 한 축이 아니라 기본값이 됐다고 봐야 한다.
온라인이 늘면 오프라인이 준다는 착각
KDI 이공 연구위원팀은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월별 신한카드 결제금액 자료를 읍면동 단위로 집계해 분석했다. 지역별로 온라인 소비가 늘 때 그 동네 오프라인 매출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본 것이다.
결과는 이렇다. 소비자 1인당 온라인 지출이 1퍼센트 늘어날 때 전체 오프라인 매출은 0.186퍼센트 증가했다. 감소가 아니라 증가다
.온라인 소비가 기존 오프라인 수요를 그대로 빼앗아 가는 게 아니라, 유통시장 전체의 소비를 키우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온라인으로 사는 게 편해지면 사람들은 예전에 사지 않았을 것까지 산다. 파이 자체가 커진 것이다.
업태를 나눠 보면 그림이 뒤집힌다
문제는 이 커진 파이가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같은 조건에서 업태별로 갈라보면 부호가 정반대로 나뉜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지출이 1퍼센트 늘 때 매출이 0.264퍼센트 감소했다. 반면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0.221퍼센트, 편의점은 0.324퍼센트, 기타 전문유통업은 0.356퍼센트씩 매출이 늘었다. 감소하는 건 대형마트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플러스다. 특히 편의점의 증가 폭이 대형마트의 감소 폭보다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늘어난 업태들의 공통점은 근린 상권이라는 것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소비자들은 여러 물건을 온라인으로 사면서도 가까운 점포는 계속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대형마트가 가진 강점, 즉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몰아서 사는 장보기라는 기능은 온라인이 가장 잘 대체하는 영역이었다. 게다가 대형마트에 가려면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그 이동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로켓배송 도입 이후의 변화를 따로 본 수치도 있다. 온라인 지출이 1퍼센트 늘 때 소비자 1인당 오프라인 결제 건수는 0.010퍼센트, 오프라인 유통업체당 소비자 수는 0.023퍼센트씩 추가로 감소했다. 빠른 배송이 매출액보다 먼저 방문 빈도를 갉아먹는다는 이야기다. 매장에 발길이 뜸해지는 게 먼저고 매출 감소는 그다음이다.
2025년 초 국내 3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KDI는 이를 한 기업의 경영 실패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봤다. 당장의 위기를 넘긴다 해도 대형마트라는 업태 전반의 어려움은 구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을 지키려던 법이 남긴 것
여기서 유통산업발전법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이 법 제12조의2는 지자체장이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에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매월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의무휴업일은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조항의 취지는 분명하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으면 그 수요가 전통시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설계다.
그런데 이 설계가 만들어진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대형마트가 쉬는 일요일에 사람들은 전통시장으로 가는 대신 휴대폰을 연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같은 소비자의 같은 수요를 놓고 경쟁하는데, 규제는 한쪽에만 걸려 있는 구조다.
실제 검증 자료도 나와 있다.
2024년 1월 정부는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는 법 해석을 내놓았고, 4월에는 전국 76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평일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 서울 서초·동대문, 부산 일부 지역이 실제로 옮겼다.
KDI가 5월에 내놓은 별도 보고서가 그 결과를 따라갔다. 평일로 전환한 뒤 대형마트 매출은 대구 4.7퍼센트, 서울 서초·동대문 2.8퍼센트, 부산 일부 지역 6.2~7.9퍼센트 늘었다. 그리고 전통시장의 유의미한 매출 감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쪽이 이득을 봤는데 다른 쪽이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그동안 막혀 있던 소비가 그냥 사라지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십수 년간 이 제도가 실제로 무엇을 지켜왔는지 다시 물어야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규제를 다 풀면 되는가
여기서 성급히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KDI 보고서는 규제 완화만 주장한 게 아니었다.
같은 보고서는 쿠팡의 압도적 성장에 시장 효율성 제고와 소비자 편익 증대라는 긍정적 측면과 경쟁 약화라는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프라인 규제를 푸는 것과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감시하는 것은 한 세트라는 이야기다.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에 대해서도 단서를 달았다. 지역별 주말 소비 집중도, 온라인 소비 비중, 유통 접근성, 인구구조, 배송 서비스 보급 수준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지역 유통 생태계의 상생 구조까지 놓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해 둔 상태고, 여야 의원안이 함께 올라가 있다.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범위에서 온라인 배송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쟁점이다.
이 자료들을 며칠 들여다보면서 계속 걸렸던 건 규제의 옳고 그름이 아니었다. 제도가 겨냥한 상대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2012년에 대형마트는 골목상권의 포식자였다. 그때 만든 그물은 그 시절의 포식자 크기에 맞춰 짜였다. 그런데 십수 년이 지나 진짜 판을 가져간 건 그물에 걸리지 않는 형태로 등장했고, 그물에 걸린 쪽은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됐다. 제도는 대개 이렇게 낡는다. 폐기되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 옆으로 비켜 지나가서.
그러면 지금 새로 그물을 짠다면 무엇을 겨냥해야 할까. 그리고 그 그물은 다시 몇 년쯤 유효할까. 온라인 비중이 절반을 넘는 데 걸린 시간이 그렇게 짧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답보다 갱신 주기를 먼저 정해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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